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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권력을 얻어내는 다양한 방법

유무형의 권력을 얻어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저자는 권력이 시공간, 희소성, 시선, 사치에서 생겨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단 위 선생님, 교회의 목사님은 모두의 시선이 닿는 곳에 위치하고, 귀한 신분일수록 희소한 공간, 공간의 짧은 변에 위치합니다. 수많은 종교는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 시선을 통제하여 권력을 얻었습니다.

종교의 위기와 기회

지금까지 사용하던 "권력의 틀"을 통해 종교를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종교는 시간이나 공간을 통제함으로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한정된 예배 시간에 특별한 종교적 공간에 모입니다. 역사적으로 지구라트가 그랬고, 지금의 기독교, 천주교가 그렇듯 모두의 시전은 종교 지도자에게 쏠립니다. 유목 민족이 많아 공간을 제약할 수 없었던 이슬람도 시간은 제한했습니다. 공간을 통제할 수 없었던 만큼 시간을 더욱 강력히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공간의 통제가 제한된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 수준이 다소 내려갑니다. 코로나 초기 많은 교회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도 대면 예배를 강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제 많은 종교 기관이 체질 개선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종교기관이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약자를 도와왔다고 말하며, 수고하고 짐 진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해야할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출퇴근은 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를 계기로 재택근무로 근무형태가 완전히 전환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 말이 되었습니다. 이제 재택근무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상급자들은 부하직원들에게 회사로 다시 복귀하라고 합니다. 상급자는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시야 내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므로 재택근무보다 출퇴근제를 선호합니다. 재택근무와 달리 출퇴근은 시선 말고도 시간과 장소 역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즉, 회사는 권력이 모이는 곳이고 많은 책임자들은 이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퇴근 정책이 상급자들에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함께 얼굴을 맞대며 고생하면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 공동체 의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너무 강하면 처부 간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거대 기업의 계열사 간 불화는 이 공동체 의식의 충돌 속에서 발생합니다. 저자는 계열사끼리 분리된 오피스 공간이 이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거점 위성 오피스를 제안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30~40분 내에 출퇴근할 수 있게 점조직처럼 오피스를 만들어놓고, 처부, 계열사를 섞어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교육 현장의 변화

코로나는 학교의 기능 중 "사회 공동체 경험"과 "탁아소"의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학생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한 수준의 상호작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선이 보이지도 않고 시공간이 충분히 제한되지도 않는 교사들의 녹화강의는 곧 교사 자신들의 권력을 낮추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지식 전달의 역할은 인강이 대체하기 시작한 상황. 교사란 직업의 입지가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기의 등장이 화가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못한 만큼 교사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화가는 당대 화가들이 사진기로 대체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역할을 찾아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교사 역시 자신들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야 합니다.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키지 못했다

코로나의 등장은 오프라인 공간을 해체시키고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가속할 것이라 예측되었습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회사는 재택근무, 교회는 온라인 예배, 학교는 인강을 도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대로 우리의 생활 양식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더 나아가 오프라인 공간인 도시의 인구는 주변의 위성 도시로 옮겨갈 것이다, 즉 도시가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적으로, 실제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친구들, 연인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즐깁니다.

공간의 소비

이번 일련의 사회 변화는 사람들의 소비 형태도 변화시켰습니다.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이전엔 직접 유명한 여행지, 카페 등지를 찾아가 사진을 게시하는 공간 소비가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명품 등을 사서 사진을 찍는 물건 소비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소비는 물건의 소비보다 특별한 시간, 즉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코로나에도 인기가 식질 않았던 힙지로가 대표 사례입니다. 어쩌면 상업 시설은 이렇게 공간을 판매하는 형태로 진화할 지 모릅니다. 이미 더 현대가 중앙 실내 공원을 조성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홍길동형 정치인과 세종대왕형 정치인

코로나 기간,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격이 상당히 내려갔지만, 불과 작년 이맘때만 해도 절대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만큼 매우 비쌌습니다. 급등하는 집값으로 패닉 바잉, 일명 영끌이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이 "홍길동형 정치인"을 양산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홍길동이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서민들에게 뿌렸던 것처럼 부유 계층에 부담을 지워 하위 계층이 지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정치인입니다. 홍길동형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은 사회가 어렵다는 신호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길동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모두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홍길동보다 절실한 사람이 세종대왕입니다.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곧 권력이었던 조선에서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이 겪는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했던 세종대왕처럼,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규제 완화와 유연한 행정일 수도 있고 공급 증대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건강한 중산층을 더 늘리려면 자가 주택 소유자가 더 늘어야 합니다. 월세 주택 거주자를는 "21세기의 소작농"이라고 표현됩니다. 소유한 부동산은 가치가 보존되지만 월세는 단순히 돈이 사라질 뿐입니다. 지주에게 밭의 사용료를 지불하던 소작농과 건물주에게 방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월세 거주자는 본질적으로 같을 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항상 내 공간, 내 거실, 내 정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만큼 셰어하우스라는 주거 형태를 따로 한번 언급합니다. 내 것이 많지 않은 셰어하우스에서의 거주는 월세에서 더 나아간, "성실한 소작농"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것이 없는, 임대주택자의 비율이 늘어날 수록 정치가의 힘이 더 커지고 특정한 집단에 부가 더 쏠릴 수 있습니다. 임대 주택 소유자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정치가에게 있으니 자연스럽게 정치가의 권력이 커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곳에 집중된 힘은 언젠가 누구든 부패하게 만듭니다.

주택 공급을 꼭 그린벨트 해제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주택 공급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린벨트 해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도시화율은 91%로 싱가포르나 홍콩같은 도시국가들에 맞먹는 수준입니다. 동시에 한국엔 이미 충분한 양의 택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충분한 택지가 있음에도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택지가 낭비되고 있다고 역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린벨트 해제가 아닌 재개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티브가 없는 도시

그렇다고 재개발을 무작정 시도해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의 많은 도시 계획들이 가장 성공한 도시, 강남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를 참고한다는 건 좋은 점이지만 문제는 모두 비슷한 모티브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도시들은 "짝퉁 강남"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처럼 모방이 아닌 특별하고 다른 새로운 형식과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지방 정부의 권한 증대, 유연항 행정이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지방 정부의 건물 규제가 모두 제각각인 것처럼 말입니다.

맺으며

계속해서 변화를 언급했듯, 저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사회의 뼈대는 지금의 변화된 사회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회의 변혁기에 새로운 뼈대가 생겨났던 것처럼, 근대기에 도시가, 현대에 고층 건물로 새 공간이, 정보화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큰 게" 필요한 때입니다.